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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일차 완료(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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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6-04-10 13:49

본문

465일차 완료(조영찬 목사)

"여전히"

26.4.10(금)

 

...그래서 이 말씀은

지친 날에 더 진하게 다가온다.

영혼은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방향은 다시 세울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영혼은

결국 다시 찬송하게 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42:5)

 

1. “내 영혼아

오늘 구절은 참 특별하다.

다윗은 자기 영혼에게 먼저 말을 건다.

내 영혼아.”

낙심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가만히 두면 마음 전체로 번진다.

불안도 마찬가지다.

작게 시작된 흔들림이

생각을 잠식하고,

기도를 약하게 하고,

시선을 땅으로 끌어내린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 안에 있는 깊은 자리와 대화를 시작한다.

이 장면은 아주 중요하다.

신앙은 감정을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중심으로 들어가

그 영혼에게 다시 방향을 말해 주는 일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해도

내 영혼은 이미 지쳐 있는 날이 있다.

그럴 때는 바깥의 소음보다

안쪽의 영혼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

왜 이렇게 주저앉아 있느냐.

무엇이 너를 이렇게 흔들고 있느냐.”

이 질문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의 시작이다.

 

2.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다윗은 낙심을 분석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자기 영혼에게 명령한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이 말이 참 깊다.

소망은 저절로 생겨나는 기분이 아니다.

하나님 쪽으로 마음의 무게를 다시 옮겨 놓는 선택이다.

낙심은 시선을 자기 안으로 가두고,

불안은 시선을 상황에 묶어 둔다.

그러나 소망은

그 시선을 하나님께 다시 들게 한다.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것은

지금 당장 모든 것이 좋아 보인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도

하나님이 마지막이 되신다는 사실을 붙드는 것이다.

내 감정이 결론이 아니고,

내 형편이 결론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하심이 결론이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소망은 약한 낙관이 아니다.

하나님을 향한 방향성이다.

영혼이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같은 하루도 전혀 다른 결을 갖게 된다.

 

3.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다윗은 찬송하겠다가 아니라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말한다.

이 한 단어가 참 귀하다.

낙심도 있었고,

불안도 있었고,

무너질 것 같은 시간도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 이후에도

찬송은 끊어지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전히라는 말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눈물이 있었지만 찬송은 남아 있고,

흔들림이 있었지만 관계는 끊어지지 않았고,

오늘이 힘들어도 내일의 입술은 여전히 하나님을 향한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분명하다.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회복은 자기 최면이 아니다.

하나님이 정말 도우시는 분이라는 경험 위에 서 있다.

그래서 찬송은 감정의 과장이 아니라

기억된 은혜에 대한 응답이다.

오늘 본문은

낙심을 모르는 사람의 말이 아니다.

깊이 흔들렸지만

그 영혼을 하나님께 다시 데려간 사람의 고백이다.

그래서 이 말씀은

지친 날에 더 진하게 다가온다.

영혼은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방향은 다시 세울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영혼은

결국 다시 찬송하게 된다.

 

주님,

제 영혼이 낙심하고 불안해질 때

그 마음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게 하옵소서.

제 영혼에게 다시 말을 걸게 하시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하옵소서.

도우시는 주님의 손을 기억하며

오늘도 여전히 주님을 찬송하는 사람으로 서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