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5 주일오전설교
예배냐? 제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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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5-10-15 13:14본문
설교본문: 사무엘상 28장 8-14절
예배냐, 제사냐: 참된 풍성함과 충만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선택
■명절 증후군을 넘어, 예배로 회복하는 한가위의 의미
민족의 대명절 추석,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풍성한 수확과 충만함을 기뻐해야 할 이 절기는, 종종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과 함께 가족 간의 갈등이 표출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그 핵심에는 ‘제사’라는 오랜 문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것은 쉽지 않은 전통이며, 때로는 온 집안의 분위기를 바꿔야 하는 중대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제사의 기원과 과정에 스며든 토속 신앙, 그리고 영적인 폐해를 깨닫는다면, 제사가 아닌 예배를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 일인지 알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사무엘상 28장의 말씀을 통해, 헛된 제사가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선택함으로써, 성령 충만한 보름달과 같은 충만한 삶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 제사의 기원과 변질, 그리고 사울의 비극적 선택
1. 조상 제사의 기원과 유교적 결합: 헛된 수고의 시작
원래 우리 민족에게는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없었습니다. 이 관습은 중국을 통해 유입되었는데, 그 시작은 죽은 조상이 아닌 살아있는 황실의 종손을 높이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황실의 통치 이념을 정당화하고 혈통을 신성화하기 위해 시작된 이 제의는 점차 확대되어 죽은 조상에게까지 제사를 지내는 형태로 변질되었습니다.
이후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유교의 효 개념이 결합되었고, 조상 제사는 종교적인 기반을 얻게 됩니다. 고려 말 주자학과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 제사 예식은, 조선 시대 유교가 국교가 되면서 토속 종교의 미신적 요소와 혼합되어 오늘날의 보편적인 제례 의식이 되었습니다. 결국, 조상 제사의 본래 목적은 죽은 조상과 무관한 정치적인 것이었으며, 이후 미신적 요소와 결합된 헛된(헤벨) 의식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제사를 지키는 이들은 이를 통해 가족이 모이고 집안의 중심이 잡힌다고 주장하며, 돌아가신 후 효를 다할 수 있는 길로 여깁니다. 심지어 조상신이 후손들에게 복을 내려준다고 믿기도 합니다. 그러나 복잡하고 엄격한 제사 절차(음식의 위치, '치' 자로 끝나는 음식 기피, 마늘 사용 금지 등)는 그저 미신적인 유치함의 반영일 뿐입니다. 또한 제사가 가족을 하나로 묶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여성들이 부엌데기처럼 일하다가 제사가 시작되면 뒤로 물러나 있는 등, 가식적이고 통제된 분위기 속에서 형식적인 결속만을 다질 뿐입니다. 성경은 살아계신 부모님께 효도하라고 명령하지만, 돌아가신 부모님은 감사와 기념의 대상이지 영적인 숭배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이 모든 헛된 수고는 솔로몬이 외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헤벨)는 외침과 다름없습니다.
2. 사울의 비극적인 선택: 하나님 단절이 낳은 두려움과 거짓 영
사울 왕의 이야기는 헛된 것을 추구했을 때 어떤 비극이 따르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삼상 28:8-14).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은 한때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했으나, 다윗과의 관계에서 질투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삼상 28:5).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극심한 두려움에 떨던 사울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자 결국 자신이 이전에 멸절시켰던 엔돌의 신접한 여자(무당)를 변장하고 찾아갑니다. 그는 무녀에게 죽은 사무엘을 불러올리라고 청합니다. 이는 오늘날 조상신을 불러 은택을 입으려는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울은 불법을 행하면서도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라고 말하며 신앙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삼는 모순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을 때 돌이키거나 기다리지 않고, 자기 만족을 위해 잘못된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무녀의 접신(接神)으로 올라온 것은 진짜 사무엘이 아닌, 그를 흉내 내는 악령의 존재였습니다(성경학자들의 일반적인 해석). 사울은 그를 사무엘로 착각하고 엎드려 절했는데, 이는 곧 있지도 않은 죽은 영에게 경배하고 제사한 것과 같습니다. 그 거짓 영이 전한 말은 더욱 어둡고 절망적이었습니다. 원래도 두려움이 가득했던 사울은 이 거짓 영의 말로 인해 더욱 심한 두려움과 기력 소진을 겪게 되었고(삼상 28:20), 결국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비참하게 전사하는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거짓 영에 사로잡혀 근심에 근심을 더한 결과였습니다.
■예배를 선택하고 성령으로 충만하라
사울이 엔돌의 무녀를 찾아가 거짓 영에게 절한 행동은, 오늘날 우리가 헛된 조상신에게 제사하며 은택을 구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할 것인가, 아니면 있지도 않은 거짓 악령을 근심하며 살 것인가? 답은 명확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지 않을 때, 그 빈틈으로 잘못된 선택과 거짓 영이 비집고 들어옵니다. 사울처럼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0절은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고 명확히 선포합니다.
이번 추석 명절, 우리는 헤벨(헛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더 이상 헛된 수고와 미신적인 제례 의식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꽉 찬 보름달처럼 성령으로 충만할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진정한 풍성함과 넉넉함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추석 가정 예배를 통해 주님께 감사하며,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는 사랑과 존중의 태도로 다가가십시오. 오직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풍성함과 충만함을 나누고, 사랑과 희망으로 가득 찬 명절을 누리는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