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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9 주일오전설교

다시 성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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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5-10-20 06:50

본문

설교본문: 스가랴 4장

I. 서론: 감동으로 시작되는 삶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외적인 능력이나 스펙을 보시고 사명을 맡기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 성령의 감동을 통해 우리가 그 사명을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 감동 없이 자기 힘으로 일을 추진하면 그 결과는 피로와 자기 공로주의로 귀결되기 쉽습니다. "내가 이 일을 해냈다"는 기념탑을 세우는 데 급급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감동된 자의 삶은 기쁨으로 충만하며, 그 수고조차도 진정한 의미에서 힘들지 않은 신나는 인생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상태인지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첫째, 모든 일에 기도로 시작하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삶의 모든 현장, 곧 운전대 앞, 책상머리, 퇴근 버스 안이 기도의 자리가 되는 것, 이것이 성령의 영이 우리 삶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접촉점입니다. 둘째, 내가 하고 싶은 일인가, 아니면 해야 하는 일인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은 즐거움을 주지만, 해야 할 일은 그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발견하게 하여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셋째,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인가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 범주 안에서만 움직인다면 하나님의 개입하실 틈이 사라지고, 우리는 결국 자기 공로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세 가지 원리—기도로 시작하며, 해야 할 일을 감당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는 자—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성전 재건을 결단했으나 주변국의 방해와 백성들의 절망으로 인해 16년 동안 공사가 중단된 그때,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주신 다섯 번째 환상은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강력한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II. 성령의 지속적인 공급: 순금 등잔대와 두 감람나무

스가랴가 본 다섯 번째 환상(슥 4:1-5)은 "순금 등잔대와 두 감람나무"였습니다. 이 등잔대는 성막의 등잔대와 유사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성막의 등잔대는 제사장이 날마다 기름을 채워야 했지만, 환상 속의 등잔대는 등잔대 좌우에 있는 두 감람나무로부터 49개의 관을 통해 자동으로 기름을 공급받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즉, 인간의 수고와 노력이 전혀 필요 없는 은혜의 시스템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와 같아야 합니다.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등불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는 이 감람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늘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감람나무는 일차적으로 당시 지도자인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지칭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 곧 왕이자 제사장으로 기름 부음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끊임없이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심으로써 우리의 신앙의 등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게 됩니다. 성령의 불로 시작되지 않은 사역은 아무리 크고 화려할지라도 결국 인간적인 한계에 부딪혀 멈추게 되지만, 성령의 감동으로 시작한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시는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고, 성령의 기름을 부어 다시 밝히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III. 성령의 능력으로 지속하고 완성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16년간 성전 재건을 자신들의 능력 밖의 일로 규정하고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은 스룹바벨에게 핵심적인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슥 4:6). 이 말씀은 뜨거운 열정과 패기로 시작했지만, 건축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힘과 지위에 의존하다가 한계에 봉착했던 스룹바벨의 실패 원인을 정확히 짚어줍니다.

우리의 삶에도 일이 막힐 때, 우리는 상황 탓이나 남 탓을 하기보다 "이 일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며, 내가 기도하며 시작하고 지속했는가?"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 다시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바울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어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인 큰 산을 향해 "네가 무엇이냐 평지가 되리라!" (슥 4:7)고 명하십니다. 성령의 능력은 질병, 관계의 상처, 재정 문제, 신앙의 침체 등 우리의 삶을 가로막는 그 어떤 '큰 산'도 평지로 만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스룹바벨에게 다림줄을 쥐여 주시는데, 이는 이제 인간적인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일의 기준이 되어야 함을 상징합니다. 성령과 함께 시작한 작은 걸음이라도 하나님 말씀이 기준이 될 때, 하나님은 그 일을 기뻐하십니다.

시작보다 어려운 것은 지속하는 일입니다. 성전 재건을 비웃었던 이들은 솔로몬 성전보다 규모가 작고 화려하지 않은 스룹바벨 성전을 보며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했습니다(슥 4:1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큰일만이 아니라, 남들이 보잘것없이 여기는 작은 일이라도 순종하는 마음을 들어 사용하십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기준인 말씀을 붙잡고 작은 일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멈추지 않고 우리의 삶에 지속될 것입니다.

결국 스룹바벨의 손에 들린 다림줄은 건물의 기초를 놓을 때뿐만 아니라 마지막 완성되었을 때 건물의 올곧음을 판단하는 도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으니 그 손으로 또한 그 일을 마치라" (슥 4:9)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시작하신 일을 반드시 끝까지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작고 보잘것없는 기초일지라도 하나님의 기준인 말씀과 성령 안에서 시작한 일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반드시 완성시키십니다.



IV. 결론: 모두 함께 오르는 은혜의 통로

하나님께서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하신 것은 성전 재건이라는 건축물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회복하고, 세상에 빛을 비추는 백성이 되길 원하신 더 크신 뜻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교회가 추진하는 작은 일(예: 승강기 설치) 역시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일은 "연약한 자와 다음 세대가 함께 오르는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라는 기도 제목처럼, 모두 함께 오르는 공동체가 되기 위한 과정을 상징합니다. 비록 속도는 느릴지라도, 이 교회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모두 함께 주님께 드려지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이 모든 공사를 통한 하나님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제는 도저히 내가 할 수 없다"고 손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은 다시 우리의 손을 높이 드십니다. 우리가 길이 끊겼다고 절망할 때, 하나님은 그곳에 길을 내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가를 재단하는 대신,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묻고, 성령님과 함께 시작하여, 성령님과 함께 끝까지 달려갈 때,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채워지는 복된 등불이 될 것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