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3 주일오전설교
내 이름 여수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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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5-11-24 06:31본문
설교본문: 이사야 44장 1-5절
내 이름 여수룬
서론: 이름이 가져오는 내면의 변화
본문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극복한 한 군인의 이야기를 통해 이름이 개인의 정체성과 내면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는지 제시합니다. 스스로를 "부서진 인간(Broken man)"이라 여겼던 그가 상담자를 통해 "살아남은 자(Survivor)"로 불리면서 치유를 경험하고, 결국 다른 이들을 돕는 "치유자(Healer)"가 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이름의 가치에 합당한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직분이나 호칭(목사, 권사, 장로 등)이 주어져도 신앙의 변화가 자동으로 보장되지 않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부르심에 우리의 삶이 반응하고 변화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성경 속으로: 야곱의 세 가지 이름
성경에서 야곱은 다윗, 아브라함처럼 위대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이 가장 많이 필요했던, 손이 많이 가는 인물로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기에 그 생애가 길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세 가지 이름의 변화는 곧 그리스도인의 신앙 성장 과정을 보여줍니다.
1. 야곱: 결핍과 허물 속에서도 택하신 은혜의 이름
1절과 2절에 반복되는 "나의 종 야곱"은 죄인된 본성과 성품을 그대로 담고 있는 이름입니다. 야곱은 "발꿈치를 잡은 자, 속이는 자"로 시작하여, 시기와 질투,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았습니다. 팥죽으로 장자권을 탈취하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두려움 앞에서 처자식을 먼저 보내고 뒤에 숨었던 비굴한 모습은 죄로 물든 옛사람, 곧 영적으로 세상의 지혜와 수단에 의존하며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런 야곱 앞에 "나의 종"이라는 말을 붙이십니다. 이는 우리가 완전해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부르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삶이 꼬여 있고, 신앙과 거리가 멀며, 실패한 인생일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사랑 안으로 부르십니다. 야곱에게 변화의 밤이 찾아온 것은 얍복강가에서 천사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입니다. 이 질문은 "너의 정체성은 무엇이냐?"는 물음이며, 야곱은 자신의 비굴했던 삶의 모든 모습이 담긴 이름인 "야곱이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내가 바로 그 속이는 자, 욕망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온 야곱입니다!"라는 자기 인정이자 심정의 변화가 시작된 순간입니다. 우리의 첫 번째 변화의 단계는 연약하고 부족한 '야곱'임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사랑으로 "나의 종 야곱아!"라고 불러주심을 깨닫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2. 이스라엘: 새롭게 출발하며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드러내는 이름
야곱이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는 순간, 천사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요 이스라엘이라 할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 32:28)고 선언합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얍복강가에서 끝난 이름이 됩니다. 새 이름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다스리신다"는 의미로 주로 해석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내 고집과 판단대로 살아온 삶에서 하나님께서 키를 잡고 항해하시는 삶으로의 완전한 전환을 뜻합니다. 영성신학자 헨리 나우웬은 진정한 영적 성숙은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주일에는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살다가도, 세상을 향할 때 여전히 야곱의 삶으로 돌아가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스라엘로 부르시며 통치하시는 삶으로 들어오라 하시니, 이제 뒤로 후퇴하는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로 살아가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주님은 이미 "나는 더 이상 너를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부르겠다"고 결단하셨습니다.
3. 여수룬: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드러내는 이름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우리를 세 번째 이름인 여수룬으로 부르시길 원하십니다. 이 특별한 이름은 이사야서와 신명기에만 기록되어 있으며, 그 뜻은 "의로운 자! 곧은 자! 하나님 보시기에 기쁨이 되는 자!"입니다. 마치 할머니가 손주를 "우리 강아지"라고 부르는 말에 사랑과 애정이 가득 담겨 있듯이, 여수룬에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야곱에서 시작하셨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여수룬이 될 것을 기대하시고 선택하셨습니다. 여수룬은 내면의 변화(이스라엘)에서 멈추지 않고, 세상을 향한 사명자의 이름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볼 때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의 단계를 넘어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하나님의 기쁨을 이루어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수룬이 되는 두 가지 방법: 목마른 자가 되어 성령을 깊이 사모하는 것 (3-4절):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같이 할 것이라" 여수룬은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성령)을 깊이 사모하고 기다릴 때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이름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마른 땅에 은혜가 넘치고, 치유와 성품의 변화가 일어나 사명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고 고백하고 행동하는 것 (5절): "여호와께 속하여 손으로 기록하였다"는 것은 말뿐이 아닌 구체적인 행동으로 주님의 소유된 자임을 선포하고 흔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지만, 하늘나라를 꿈꾸며 "나는 여호와께 속한 자"임을 선포하고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자가 여수룬입니다.
삶 속으로: 시냇가의 푸른 버드나무
주님은 우리를 여수룬! 너는 내가 기뻐하는 자야! 라고 부르십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기뻐하는 줄 아냐? 라고 우리를 향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주님의 부르심에 더 이상 우리 삶에 야곱이라는 이름의 흔적을 지우고, 다시 야곱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자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멈추지 않고 여수룬이라는 하나님의 기쁨을 이루어드리는 사명자로 세워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여수룬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을 깊이 사모함으로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우리의 모든 신앙 세포들이 다시 살아나 푸르고 푸른 시냇가의 버드나무와 같은 여수룬이 되길 소망합니다. 나는 더 이상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닌,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아감에도 하늘나라 꿈꾸며 나는 여호와께 속한 자임을 선포하며,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세상이 아니면 우리 동네라도, 동네가 아니면 우리 가족에게라도, 우리 교회에서라도 하나님의 여수룬으로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들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